Greece and Turkey VII / Istanbul 카파도키아를 떠나 비행기편으로 이스탄불에 도착한 날이 공교롭게도 5월 1일,노동절이라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퍼레이드가 있어서 길이 막혔다고 안내자 김지희양이 몹시 당황한다. 우선 보스포러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위에 자리잡은 Pierre Loti Tea House에서 이스탄불 시 전경을 내려다 보며 터어키식 차를 마시며 김지희양이 들려준 Pierre Loti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감미한다. Pierre Loti는 19세기 프랑스 장교이며 명성있는 문학가로서 이스탄불에 체류중 터어키여인과 비연에 빠졌다가 자기의 고국을 버리고 이곳에 돌아와 잃어 버린 애인을 생각하며 이 언덕에 앉아 슬픈 여생을 마쳤다는 사랑이야기야말로 믿거나 말거나라도 이 나이에도 가슴을 적시고도 남는다. 그리스와 터어키에는 외국 가이드에게 일임시키지 않고 본국인 가이드가 동행해야 하는 법규에 따라 터어키인 제니가 함께 다녔는데 이 복잡 다단한 이스탄불에서는 제니의 역활이 필수임을 절감하는 기회가 왔다. 실예로 버스기사가 우리를 관광지앞에 내려주면 제니는 어느새 입장권을 사가지고 대기하고 있음으로 시간을 절약하곤 했다. 도시 교통이 마비상태라 보스포러스 선상 크르즈로 이스탄불 선상 유람을 즐기고 있는 동안 퍼레이드가 끝나고 다리가 열리고 교통이 풀렸다는 정보를 받고 재빠르게 달마흐체 궁옆에 유람선을 정박시키고 우리를 안내하는 기발한 처리덕분에 하마트면 놓칠번한 터어키의 베르사이유라는 화려한 달마바흐체 궁을 볼 수 있었다. 내부의 사진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그 어마 어마한 샨델리아들과 아릿다운 하렘의 내부를 눈으로만 감상하고 근대 터어키의 아버지로 숭앙받는 아타 튀르크의 마지막 집무실에 그의 사망시간에서 정지된 벽시계를 보며 터어키인들의 쎈티멘트를 감흥깊게 느꼈다. 서둘러 이스탄불 쉐라톤에 여장을 풀고 소문난 Orient House의 Dinner/Show에서 흥미로운 전통 혼례식 소개와 아름다운 무녀들의 Belly Dance에 매료되었다. 이스탄불은 BC 667년에 비잔티움으로 시작하여 BC 4세기에는 페르시아에 점령당했다가 BC 330년에 콘스탄티노플이 되고 AD 146년에 로마의 지배아래 Byzantium이 되고 AD 330년에는 Constantinopolis City가 되었고 395년에는 Eastern Roman Empire의 수도가 되었고 1204년 4차 십자군전쟁에 심히 파손되었다가 1261년에 동로마가 다시 비잔틴으로 해방되었다가 1453년 동로마(Byzantine)는 오토만제국에게 패망하고 오토만제국의 수도로 콘스탄티노플이 되었다가 1925년 공식적으로 다시 이스탄불이 되었고 터키공화국의 수도는 앙카라로 옮겨지고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의 교량적인 문화, 교통, 산업도시로 메트로폴리탄으로 발전을 계속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Blue Mosque로 갔으나 입장하려는 여행객들의 줄은 이미 마치 바티칸에 입장하려는 여행객 줄만큼 길었다. 여기에 우리 한국인 김지희양의 잽싼 순발력과 현지 가이드 제니의 합동작전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불루 모스크앞에 서서 지치고 말았을게다. 우리가 다른곳을 관람하고 오는동안 제니가 줄을 서서 우리들 순서를 확보하고있었다. 한국인만의 탁월한 재능일 것이다. 시간이 너무 짧았다. 런던을 이틀나절에 다 구경할 수 없듯이 2,600여년의 수도로 온갖 동, 서 국가들의 침략과 전쟁을 겪으며 터어키의 운명을 감내하고 아시아와 유롭문화를 함께 겹쳐서 꽃피운 역사가 엄연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미묘한 도시, 새로 탄생한 터어키공화국의 박동이 격하게 뛰고 있는 대도시, 우리가 부리나케 다녀 온지 얼마되지 않아 그들의 격랑은 이스탄불 도시 가운데에서 폭팔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그 급한 발걸음으로 유럽 기독교 예술의 전당이였다가 이슬람교의 사원이 되었다가 현제는 뮤지움이 된 325년에 콘스탄팉 대제때 건축된 성 소피아성당(Hagia Sophia)과 이를 능가하는 사원을 짓기 위해 1620년에 건축한 이슬람교의 대 사원 Blue Mosque사원에서 크리스탈이 섞인 유리타일 모자잌 유리창을 통해 비추이는 신비로운 빛과 색의 조화를 볼 수 있었던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다. 오토만제국을 멸망시키고 현대 터어키공화국을 이끌어 온 터어키의 아버지 Ata Tuerk가 전통적인 국교였던 이스람교에서 터어키를 해방시키고 종교의 자유를 갖게하고 터어키 알파벹을 개혁하고 여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등 민주주의 공화국을 설립하고 전통적인 이슬람교 여인들의 히잡쓴 모습도 생각같이 많이 보이지 않았고 특히 많은 이스탄불의 젊은 여인들의 모습은 서방 도시인들과 다름이 없음에 놀랐고 하루 다섯번씩 울려 퍼지는 이만의 기도문 낭송소리도 이스탄불의 도시 소음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단지 도시의 파노라마 여기 저기 솟아 오른 빛의 첩탑 미네랕들만 하늘을 향한 그들의 소망과 기도를 간구하는 듯, 나그네의 마음도 가다듬게 한다. 끝으로 여러가지로 세밀한 배려를 베풀어 우리들의 여행을 값지게 해 주신 아시아여행사의 정수자사장님과 함께 동고 동락해 주신 25분 동행자 여러분과 우리들의 정겨운 가이드, 김정숙씨, 김지희양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미숙한 사진과 글을 읽어 주신 여러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Mustafa Kemal Atatuerk started alphabet revolution here. His office clock stopped at the time of his death in his office. 35 the water is turned on to prevent eavesdropping. placed here in 390AD to monumentalize Egyptian Pharaoh III. Tumosis’ passage beyond Euphrates River in B.C. 1471. |
Saturday, June 29, 2013
Greece and Turkey VII ; Istan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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